길버트 박사의 최면 육아법, <굿 보이 메서드>는 동명의 TV쇼 방영을 기점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부모들은 월 단위 구독 서비스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아이들에게 필요한 암시를 걸었고, 아이들은 항상 규칙적인 시간에 잠이 들고, 누가 깨우지 않아도 필요한 시간에 일어났다. 화면에 불규칙적으로 등장하는 다양한 도형과 문자 나열, 이어폰을 통해 듣는 고유 고주파 음은 아이의 잠재의식 속에 간단한 명령어를 입력할 수 있도록 그들의 정신을 한껏 유연하게 만들었고, 부모들은 그 상태로 <굿 보이> 애플리케이션 화면의 각 버튼을 눌러 아이를 몇 시에 재울지, 깨울지, 공부하게 할지, 혹은 더 온순하게 할지, 명석하게 할지 지정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암시의 도움으로 잔소리 없이도 스스로 학교 숙제를 해내고, 항시 예의 바르게 지냈으며, 성적은 꾸준히 향상되었다.
많은 이들이 길버트 박사의 육아법을 비윤리적이라 지적하기도 했으나,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아이들의 지적, 사회적 수준 격차는 시간이 흐를 수록 기하급수로 커져만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굿 보이 메서드>의 연령 확장판인 <굿 보이 플러스>가 출시된 이후로는 최면 육아법을 활용하지 않는 부모는 자식의 미래를 걱정하지도 못하는 무책임한 바보라고까지 여겨지게 되었고, 이후로는 뒤늦게나마 아이를 최면 암시에 잘 걸리는 체질로 유도하기 위한 영양제와 시술 따위가 빠른 속도로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굿 보이 메서드에 시술이나 영양제 따위는 필요치 않아요. 아이의 잠재력을 믿어주세요. 그게 부모가 할 일이니까요. - Dr.길버트>
길버트 최면 육아법 예찬론자인 레이먼드 그리브스는 <굿 보이 스카이 블루 플러스>가 제공하는 모든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레이먼드 주니어는 모든 면에서 완벽한 훌륭한 아들이었다. 그렇게 완벽한 아이는 <굿 보이 메서드>, <굿 보이 플러스>, <굿 보이 스카이 블루 플러스>를 거쳐 완성된 최면 육아의 산물로밖에 볼 수 없었기에, 주니어가 최면 사용자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그렇게 그리브스 부인은 동네 사교의 중심에서 <굿 보이 메서드>에 관한 모든 최신 정보를 독식하는 훌륭한 여제로 군림했다.
초겨울. 레이먼드 가족은 해외로 스키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들은 함께 맛있는 것을 먹고, 재밌는 것을 구경하고, 만족스러운 첫날을 보냈다. 호화스러운 스파 체험은 최고였다. 주변의 자성을 띈 물체가 사라지자, 주니어의 망막 속 크립토크롬 단백질은 자북 방향이 달라진 것을 감지했다.
다시 손목에 감긴 주니어의 스마트 워치에 전원이 들어오고, <굿 보이 스카이 블루 플러스> 애플리케이션 로고가 아름다운 하늘빛을 발한다. 주니어가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이어폰은 연녹색으로 점멸한다.
“다녀오겠습니다.”
“어디를?”
주니어의 머릿속에서 갖은 개념이 상충하기 시작한다. <굿 보이 스카이 블루 플러스> 애플리케이션은 주니어의 무의식에서 검출된 오류를 바탕으로 새로운 자북 방향에 적합하도록 암시 내용을 교정한 뒤, 무선 이어폰으로 암시 변경점을 송신했다. 자북 변경점은 또 다른 변수인 시차와 지역, 언어, 버전 변경점, 그리고 그리브스 부인과 주니어가 사용하는 싱크된 스마트 패드, 워치의 서로 다른 미묘한 변경점 절충에 의해 무수한 새로운 변경점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굿보이 메서드>는 고객의 안전을 위해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가 예상될 경우 이에 앞서 최소 6시간 전에 암시 초기화를 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비록 아무도 읽지 않고 동의하는 항목에 포함되어 있지만….
“그러니까, 다녀오겠습니다.”
“주니어, 이 시간에 어딜 가겠다는 거니? 밖에 구경하려고?”
“금방 다녀올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브스 부인은 부모들이 가지곤 하는 동물적 감각으로 주니어의 머릿속에서 무엇인가 틀어져 버린 것을 감지한다.
“주니어, 이리 와.”
“알겠어요.”
주니어는 이후로도 한밤중에 홀로 나가려는 둥 이상행동을 시작한다. 주니어가 문지방에 머리를 부딪혀 쓰러지는 소리에 깨어난 그리브스 부인은 스마트 패드를 열어 암시 초기화를 사용하려 하지만 해외 데이터 로밍 에러와 <굿 보이> 애플리케이션의 지역 및 언어 설정이 자동으로 바뀌어버리는 탓에 애를 먹는다.
“엄마, 저 아직 안 다녀왔죠? 아마도 그런 것 같은데요.”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복잡다단하고도 잘못된 암시 초기화 시도는 주니어의 상태를 악화시켰다. 주니어는 혼란 속에서 침을 흘리기 시작한다. 그리브스 부인은 주니어의 상태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 위해 애플리케이션 구석의 아이콘을 눌러 고객센터로 연락을 취한다.
“여보세요?”
“워르스 휘펜 탁? 히알세 구뜨 보이 아펜.”
외국인이다. 지역 번호를 적용해 다시 걸어야 한다. “엄마, 저 이제 그만 다녀올 때가 되었어요.” 다시 연결된 고객센터 직원은 휴가철 임시 대응을 위해 고용한 직원으로, 제대로 된 대처 방법을 모른다. “죄송하지만 길버트 최면 육아법은 3세 이상 10세 미만의 아이를 위한 거예요. 실례지만, 자녀분의 나이가 어떻게 되지요?” “아니, 우리가 사용하는 건 길버트 최면 육아법 <굿 보이 스카이 블루 플러스>예요. 15세까지 사용 가능한 버전이요.” “아. 그렇다면 실례지만 혹시, 얼마나 오래 암시를 사용해 오신 것이죠?” “12년 정도요. 지금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요.” “2분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상담 직원은 먼 곳에서 저들 나름의 혼란스러운 토론을 시작한다. 대기 보류용 멜로디가 이어진다. 드뷔시의 <달빛>이다. 주니어는 분홍 잇몸을 드러내 보이며 눈물과 침을 흘리고 있다.
“기다리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저희 길버트 최면 육아법, <굿 보이 메서드>와 <굿 보이 플러스>, 그리고….” “<스카이 블루 플러스>요!” “예, <스카이 블루 플러스>는 사용자에 따라 다양한 체험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며, 이에 대해선 어떠한 법적 책임을 지지 못한다는 점을 우선 안내해 드려요. 어디, 제가 한 번 초기화 대신 관리자 모드로 교정 시도를 해 볼게요. 아이 쪽으로 카메라를 향해 주세요. 자, 주니어, 이쪽을 보렴!” 스마트 패드 화면이 암전되더니 무작위 도형이 계속 미친 듯이 다른 도형으로 변하는 화면으로 바뀐다. “잠깐만요. 어머님, 이어폰이요. 아이 이어폰 끼우셔야죠.” 직원이 시도한 암시 교정 방법은 더 안 좋은 결과를 불러온다. 아이는 이제 망가진 기계처럼 멈추지 않는 눈물을 흘리며 경련과 함께 이빨을 부딪쳐 이상한 딱딱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제발…. 어떻게 좀 해봐요!” 어느새 뒤에서 지켜보던 그리브스 씨가 스마트 패드를 뺏어 들고 소리친다. “씨발 애미 뒤진 새끼야, 빨리 어떻게든, 이걸 좀!” “이건 제가 대체 뭘 어떻게 해야….”
짧게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달빛>의 멜로디가 들려온다. 상대방의 첫 음절이 들려오자 마자 그리브스 씨가 다시 욕설을 내뱉으려 하지만, 녹화된 안내 문구다.
<굿 보이 메서드에 시술이나 영양제 따위는 필요치 않아요. 아이의 잠재력을 믿어주세요. 그게 부모가 할 일이니까요. 굿 보이 스카이 블루 플러스와 함께하세요.>
“고객님, 저희 직원에게 직접적인 욕설을 사용하신 것이 감지되어 서비스 센터로 자동 교환되었습니다. 실례지만 무슨 일이시죠?” 그리브스 씨는 신경질적으로 애플리케이션을 종료한 후, 인근에 상주하는 의사에게 연락을 취한다.
의사는 주니어의 부딪히는 이빨 사이로 즉효성 신경안정제를 밀어 넣어 겨우 아이를 기절시킨다. 그리고 비상시에 쓸 수 있는 고무 재갈을 하나 주고 떠난다. 그리브스 부부는 다음 날 바로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구독 해지하는게 좋겠어. 당장.” “당신, 지금 당장 구독 끊는 건 위험해요. 일단 집에 돌아가서…, 그때 생각해요.” 그리브스 부인은 오랜만에 담배 생각이 간절하다.
그리브스 부부는 다음 날 아침, 주니어가 없어진 것을 깨닫는다. “잠깐 어디 구경이라도 갔겠지. 수영장이라던가. 아니면 지하 볼링장에….” 떨리는 목소리만큼이나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얼마 지나지도 않아 그리브스 부부는 패닉상태가 된다. 경찰에 연락을 취하고, 두 사람은 좁은 어항 속 금붕어처럼 초조하게 방안을 빙빙 돈다. “대체 어딜 간 거야?” 주니어를 찾는 안내방송 소리가 호텔 곳곳에 공허하게 울려 퍼진다. 그리브스 부인은 스마트폰 달력을 뒤적인다. 주니어가 영재교육을 위해 주립대학에 방문하는 날이니까…, 시차까지 고려한다면…, 새벽 4시 쯤 집을 떠났을지도 모른다. 그리브스 부인은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지만, 여전히 또 다른 임시 상담직원이 도움이 되지 않는 조언만 해 준다. “만약 저희 길버트 최면 육아법 <굿 보이 스카이 블루 플러스>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하신다면, 환불 처리를 도와드릴게요. 애플리케이션의 구독 항목을 참조하시거나, 원하실 경우 유선상의 계정관리 부서로….” 그들은 호텔 방을 뛰쳐나가 주니어를 찾아 헤맨다. 연결된 상태로 어쩔 줄 모르던 임시 상담직원은 드디어 도움이 되는 말을 꺼낸다. “지금 이 시각에 있을 법한 곳으로 가보세요. 아직 암시 상태라면 자녀분은 지구 자기장을 감지해서 아마도 그쪽으로 이동했을 거예요.” 그리브스 부인은 벌써 정신을 잃고 쓰러질 것만 같다. “자기장이요?” 스마트 패드를 지도 앱으로 전환해 빙빙 돌며 모국으로의 방위를 확인한다. 그리고 고개를 들자 빽빽한 침엽수림이 보인다. 뜨문뜨문, 출입 금지 픽토그램이 그려진 푯말이 박혀 있다. 그리브스 부인은 비명을 지르며 주니어를 찾아 숲속으로 달음박질친다.
날이 어두워지자, 수색에 자원한 마음씨 착한 관광객들이 각자 후레쉬를 들고 주니어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브스 부부는 지휘 본부 구석에 반쯤 쓰러져 여러 대의 종달새 드론이 종횡무진 숲속을 탐색하는 과정을 지켜본다. 그들 중 하나가 어둠 속 달빛을 받는 인형의 실루엣을 발견한다. 주니어는 울창한 소나무 숲 중간에 선 채로 얼어붙어 있다. 적외선 카메라로 찾을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곳곳의 핏줄이 터지고 퉁퉁 불어난 채 얼어 있지만, 그 표정은 평범한 학교엘 가는 모습의 소년이다. 차이점이라면 왼발을 뻗은 뒤 오른발을 뻗지 못했다는 것뿐. 주니어는 작은 스피커로부터 나오는 방송에도 반응하지 않는다. 종달새 드론의 배에서 뻗어 나온 가느다란 정밀 집게가 소년의 귀에 걸린 채 연녹색으로 점멸하는 무선 이어폰을 벗겨 내려다 그만, 함께 얼어붙은 귀를 뜯어내 떨어뜨리고 만다. 떨어져 나간 귀에 박힌 이어폰에서 클로드 드뷔시의 <달빛>이 반복 재생되고 있다.
<끝.>